시와 산문

181223

181219

181217

그의 눈동자가 일순간 일렁였다. 아마도 그의 동요한 마음이 드러난 것이리라. 그는 고개를 들어 어둑한 하늘 위에 떠 있는 달을 바라보았다. 달이 이렇게 눈부셨던가. 그는 눈시울이 살짝 시큰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 달을 삼키다, ILEU

181214

아무도 나를 찾지 않고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고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고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면-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나를 조여오는 좁은 마음이다 가차 없고 초라하며 잔혹하고 나약하다 셀 수조차 없이 죽이고 죽여왔다 스스로 지쳐 나가 떨어질 때까지 질리지 않고 마음에 비수를 쑤셔 넣었다 반복되는 행위를 멈추지 못한 채 기어코 말라붙은 줄만 알았던 ...

181213

서로의 몸짓에서 한기를 느꼈을 때 우린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너와 나의 열은 온도가 달랐고 방향이 달랐다 그래도 한때 우리는 주고받는 열이 있었다 비록 이제는 열을 다한 우리가 다른 열로 가득 차길 바라며 잠시, 식어가기로 했다 - 열감, ILEU

181209

나는 이날 이때까지 그리워하며 꽃잎을 그러모았다품 안에 가득한 잎들을 엉성한 나뭇가지에 붙여주어도매서운 칼바람에 다시 흩어 떨어지고 말았다나는 오늘 지금에도그날의 봄에 머물러있다찬란하고 어여쁘던 잎들은거짓인 것처럼 메말라버린네가 있던 그 벚나무 아래에서 머물러있다 - 아직, 그 겨울, ILEU

181208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항상 있을 거라고 돌아가면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나와 같은 마음일 거라고 잊혀짐 속에서 절대 변치 않을 수 없던 그것은 닳고 마모되어 아스러져 버렸습니다 인제야 나타난 저에게 거세게 뭇매질을 하더니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상실감은 말라붙은 하늘을 적셔주었습니다 - 미처 몰랐던, ILEU

181207

미안해요 제가 많이 늦었죠 간밤에 당신 꿈을 꾸느라 늦었어요 변명 같지만 진짠걸요 정말이에요 믿어줘요 혼자 웅크려있는 당신이 쓸쓸해 보여서 따뜻하게 안아주다가 늦잠을 잤어요 ⠀⠀⠀⠀⠀⠀⠀⠀⠀⠀⠀⠀⠀⠀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그래도 당신을 혼자 둘 수는 없잖아요 응, 나도 고마워요 ⠀⠀⠀⠀⠀⠀⠀⠀⠀⠀⠀⠀⠀⠀ ⠀⠀⠀⠀⠀⠀⠀⠀⠀⠀⠀⠀⠀⠀ - 언제나 어디서든, I...

181206

서로에게 물들기 시작하면서부터 조금씩 천천히 번져간다⠀⠀⠀⠀⠀⠀⠀⠀⠀⠀⠀⠀⠀⠀ 완연하던 색은 온데간데없이 내 위에 너를 덧칠한다 선명했던 두 색이 섞여 더욱 아름답고 화려할 줄 알았지만 칙칙하고 이도 저도 아니게 바래버렸다 그렇게 영영, 잃어버리고 말았다⠀⠀⠀⠀⠀⠀⠀⠀⠀⠀⠀⠀⠀ ⠀⠀⠀⠀⠀⠀⠀⠀⠀⠀⠀⠀⠀⠀ ⠀⠀⠀⠀⠀⠀⠀⠀⠀⠀⠀⠀⠀⠀ - 파레트, ILEU ⠀⠀...

181205

그때는 그래서 좋았어 그래도 좋았지 그래, 그랬지 그랬는데 어느새 달라져 버려서 구차하게 더듬거리며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 - 그곳에 혼자 서서, ILEU ⠀⠀⠀⠀⠀⠀⠀⠀⠀⠀⠀⠀⠀

181204

입안에서 짓이겨진 고요한 외침을 마음으로 삼키자 짧은 탄식이 치고 올라왔다 허공에서 가라앉는 침전물이 되었다 마음은 끝끝내 너에게만큼은 닿지 않았다 내뱉지 못한 그것은 흐르지 못하고 마음 어딘가에 웅덩이가 되어 고여있다 - 진심의 찌꺼기, ILEU

181203

사랑은 할수록 나를 잃어가게 된다 사랑이 더해질수록 내가 너인지 네가 나인지 헷갈린다 온전히 나인 채로 사랑하기란 쉽지 않다 문득 내가 아닌 듯한 기분이 들었다 너와 헤어지고 나서도 오랫동안 나란 사람은 없었다 - 실종, ILEU